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르키예 독립전쟁 (문단 편집) == 전쟁의 발발 원인 == [[1918년]] [[10월 30일]] [[오스만 제국]]과 [[협상국]]이 무드로스 정전 협정을 체결하면서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던 [[중동]] 지역 내 전선들이 소강 상태로 들어갔다. 협상국은 이 협정을 통해 [[보스포루스 해협|다르다넬스 해협]]을 통제할 권리와 더불어 '''오스만 제국 영토 내에서 발생할 소요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국 내의 영토를 점유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.''' 결국 같은 해 [[11월 12일]] [[협상국]]이 [[이스탄불|코스탄티니예]]에 입항해 도시 점령을 선언했으며 [[영국군]]은 튀르키예 동부의 일부 도시를, [[프랑스군]]은 [[시리아]]에서부터 올라와 서부 [[아나톨리아]]일대의 도시들을, [[그리스군]]이 [[동로마 제국]] 회복인 대그리스주의(통칭 [[메갈리 이데아]])을 명분으로 [[유럽]]에서는 [[트라키아]] 동부에서 [[이스탄불|코스탄티니예]]까지, 바다를 건너와 [[소아시아]]에서는 [[이즈미르]]와 [[트라브존]] 일대의 룸(rum)[* 튀르키예 국적을 갖고 있는 [[그리스인]]을 일컫는 말로, 그리스 국적을 가진 그리스인인 유난(Yunan)과 구분된다. 룸은 [[로마 제국]]을 가리키는 말로 [[비잔틴 제국]]의 옛 영토에 거주하던 정교도들을 싸잡아 로마인이라고 불렀던 게 이어지는 것이다. 유난(yunan)은 [[이오니아]]를 뜻하던 고대 [[페르시아어]]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로 [[페르시아인]]들이 과거에 이교도 [[그리스인]]들을 부르던 말이었다.]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영역들을 점차 점령해나가기 시작했다. [[1919년]] [[파리 강화 회의]] 이후 [[협상국]]은 [[1915년]]부터 [[1917년]] 사이에 비밀리에 체결된 오스만 제국 영토 분할안에 따라 계획을 차곡차곡 실행해 왔으며 이는 [[1920년]] [[8월 10일]]에 체결된 [[세브르 조약]]을 통해 굳어졌다. 이 조약에 따르면 옛 오스만 제국의 속령 중 [[튀르키예인|튀르크인]]들에게 남는 건 중앙 아나톨리아 일부뿐으로 나머지는 협상국들이 나눠 가지는 사실상 오스만 제국의 해체나 다름없는 조약이었다. [[파일:세브르 조약.svg]] [[세브르 조약]]으로 결정된 오스만 제국 분할안. [[제1차 세계 대전]] 이전에는 오스만 제국령이었지만 전쟁 중 [[프랑스]]와 [[영국]]이 점거한 오늘날의 [[이라크]], [[시리아]], [[요르단]], [[레바논]], [[팔레스타인]], [[이스라엘]]은 논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